"청혼할 때 프랭크가 뭐라고 했는지 알아요? 정확히 기억해요. '원하는 게 행복이라면 청혼을 거절해. 아이도 안 낳을 거고 은퇴하고 편히 쉬길 바라지도 않아. 그런 건 신경 쓰지 마, 절대 지루한 일은 없을 거야.' 청혼하는 남자들은 그 외에도 많았지만 날 이해해준 건 프랭크가 처음이었어요. 날 떠받들어 모시지 않았죠. 감싸줄 필요가 없다는 걸 알아차린 거예요. 내 손을 잡고 반지를 끼워 줬어요. 승낙할 거라는 걸 알았으니까요. 원하는 걸 손에 넣을 줄 아는 남자예요."
미국의 정치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에서 클레어 언더우드의 대사이다. 가끔 술자리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곤 했다. 누구든 자기의 백그라운드와 능력으로 어느 선까지는 올라갈 수 있지만 그 이상을 넘는 경지에 오르려면 배우자의 조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리고 그 예를 난 빌 클린턴과 힐러리 클린턴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빌 클린턴은 그의 배경과 능력으로 주지사까지는 될 수 있었지만 힐러리 클린턴의 도움 없이는 46세에 절대 대통령이 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또한 힐러리 클린턴이 바람둥이 빌 클린턴이 대통령의 탄핵의 발단이 되었던 르윈스키와의 섹스 스캔들에서도 빌 클린턴을 지지했던 이유는 결국 스스로 대통령이 되기 위해선 배우자 빌 클린턴의 외조가 반드시 필요했기 때문이다라는 점을 강조한다.
1980년에는 미국 가정의 25퍼센트만이 맞벌이 부부였다. 오늘날 그 비율은 80퍼센트를 넘어섰고, 세계적으로는 열명 중의 여덟 명의 비율로 접근하고 있다. 이처럼 돌이킬 수 없는 여성의 사회진출에는 경제적인 문제와 여성들의 야망이라는 두 가지 동력이 작용하고 있다.
함께 일해요 _존 그레이, 바바라 애니스
일과 가정의 분리는 산업사회의 산물이다. 농경사회에서는 명확히 구분되지 않았던 일과 가정생활이 산업사회가 진행되면서 점차 직장은 삶을 영위하기 위한 경제적 활동 공간으로, 가정은 일하는 동안 쌓인 피로를 풀고 여가를 즐기는 신성한 사적 공간으로 받아들여지게 되었다(김주엽, 2006; Shumate&Fulk, 2004). 하지만 한국도 결혼을 했다면 맞벌이 부부로 직장생활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다. 본인이 근무하는 회사에서도 이제 여성의 비율은 남성의 비율을 넘는다. 그만큼 여성의 사회진출이 많아지고 돈을 번다는 것이 남성만의 의무가 아니게 된 것은 이미 오래 전의 이야기이다. 특히 분단국가인 대한민국의 상황에서 병역의무로 여성이 대학 졸업 후 먼저 사회진출을 하게 됨으로 인해 결혼해서 아이를 갖기 전까지 직장 내에서의 여성의 비율은 더욱더 높은 편이다. 이제 가정도 여성들만의 의무 공간이 아니고 직장과 마찬가지로 공동으로 가사와 육아를 분담해야 하는 공간이 되어 버렸다. 결국 한 영역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사용된 자원은 소모되어 사라지기 때문에, 다른 역할을 수행하는 데 있어 잔여 자원만이 활용 가능하게 된다. 따라서 직장인이 직장에서 수행하는 역할인 직장생활과 가정에서 수행하는 역할인 가정생활일 사이에서 상충관계가 발생하여 갈등이 발생한다.(김주엽, 2006).
직장 내에서의 변화
과거 20년 전 IMF 시절이 있었다. 지금 생각만 해도 끔찍했던 시절이다. 대학을 졸업해도 취직을 할 수 없었고 기업들은 줄도산에 대기업마저도 명퇴(명예퇴직)이라는 이름 아래 인력을 대폭 해고를 했다. 안타깝게도 그 당시 명퇴의 1차 대상은 '일과 가정' 중에 가정을 더 중시하는 직원들일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이미 20년이 흘러서 점점 조직문화도 달라져 왔다. 이제 팀의 회식을 하는 것도 팀원들이 좋아하지도 않고 회사의 조직화합 차원에서 주말에 등산 가는 것은 옛날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점점 조직보다는 개인이 중요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가정이 있는 직원들 뿐만이 아니고 이제 열 명 중 세명은 독신인 사회에 우리는 살고 있다. 혼밥, 혼술 등 쏟아지는 '나 홀로 문화'는 이제 대세가 되어 버렸다. 집단주의에서 가족주의를 거쳐 이제 '합리적 개인주의'의 시대이다. 한때는 공동체가 또 그다음에는 가족이 우선인 삶이 중요했던 시기가 있었지만 지금은 내가 그 무엇보다 가장 중요해졌다.
최근 월 스트리트 저널의 기사를 보면 미국도 지난 몇십 년 동안의 변화로 9-to-5가 점점 없어지고 있으며 초과 근무가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근무시간이 갈수록 더 많이 소요되고, 안정성이 떨어지고, 유연한 근무도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1973년에는 미국인의 6%가 초과 근무를 했다고 답한 반면 2016년에는 26%가 주당 48시간 이상 근무한다고 답했다. 회사들은 1973년 이래로 근로자들의 유급 육아휴가와 원격 근무 옵션과 같은 직장 생활의 균형을 돕기 위해 더 많은 혜택을 제공함에도 불구하고 고용주들에 의한 보험 혜택도 줄어들었다. 기업들은 보상 및 자본 투자 측면에서 직원들에게 지출을 덜 하고 있으며 투자자들은 30년 전에 비해 세배나 많은 돈을 받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점점 고용 시장에서 근로자들이 자유 계약 선수처럼 행동하는데 기여하고 있다.
이것은 미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글로벌 기업이나 대기업에 근무한다고 해서 중소기업보다 더 적은 시간을 근무하고 더 많은 혜택만을 받는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정확히 중소기업보다 급여가 많은 만큼 더 많은 실적으로 나와야 한다. 예전 같으면 승진도 빠르고 부하 직원도 연차가 올라갈수록 많아졌지만 지금은 신입사원을 뽑는 대신에 인턴으로만 근무시키고, 과거의 대리같이 일하는 부장, 과장같이 일하는 상무, 부장같이 일하는 대표이사가 되어 버린 것이다. 그만큼 정규 인력을 줄이고 효율을 최대한 높이며 아웃소싱을 최대한 이용하는 방법을 기업들은 찾고 있다. 그로 인한 실적에 따른 보상을 급여와 보너스로 나눠주는 형태이다. 중소기업도 마찬가지로 대기업의 아웃소싱을 한다면 그들의 효율에 맞춰 업무강도는 더 높아져 갈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문재인 정부의 정책을 보면 일자리를 늘리고 계약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최저임금을 올린다는 것이 기본 노동정책이다. 기업들의 입장에서 보면 한국에서는 고용은 쉽지만 해고가 쉽지 않기 때문에 기형적으로 비정규직이나 아웃소싱을 늘려 온 것이 사실이기 때문에 기업들이 이런 정부의 정책을 따라가는 것은 당장 쉽지가 않다.
결국 종합해 보면 '일과 가정'간 평형 균형을 맞춘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불가능한 일일지 모른다. 둘 다 못하는 것은 쉬울 수 있으나 둘 다 잘하는 것은 너무 어려운 일이다. 특히 이제 가족보다도 개인이 더 중요해진 합리적 개인주의 사회에서는 직장, 가정, 개인 이 세 가지에 대해서 과거와는 다른 접근 방식이 필요할 것 같다.
누구를 위해서가 아닌 나를 위해서
과거 가난한 시절을 벋어 나고 있던 70~80년대 부모와 형제자매를 위해서 희생하는 경우도 있었다. 대학을 포기하고 열심히 벌어서 동생의 학비를 대던 시절도 있었다. 중국에서는 养儿防老라는 말이 있다. '아이를 잘 양육해서 나의 노후를 대비한다'라는 뜻이다. 중국에 가보면 도시에 사는 대부분의 맞벌이 부부의 아이들은 그들의 부모들이 돌봐준다. 심지어 고향에 아이들을 부모에 맡겨두고 서로 다른 도시로 상경해서 열심히 일하는 부부도 본 적이 있다. 지금 대한민국의 자화상은 어떤가? 부부가 열심히 맞벌이를 하고 자녀를 낳고 그리고 자녀의 양육과 교육에 올인을 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2018년도가 되면 대한민국도 총인구에서 65세 이상의 인구가 14%가 넘는 고령사회가 된다. 현재 저출산으로 인해 평균 연령도 41세나 된다. 자녀가 아닌 부부와 나의 남은 인생에 대해서 고민해야 할 때이다. 자녀는 특히 부모의 소유물이 아니다. 자녀의 인생에 너무 매달리지 말자. 오히려 자녀에겐 당장 경쟁에서 이기는 점수 따는 법이 아닌 자립심을 키워줘야 한다. 특히 한국을 넘어 세계관을 심어 줘야 한다. 우리의 자녀들은 땅덩어리도 좁고 경쟁이 치열한 한국에만 국한하여 살아갈 필요가 없다. 아이에게 쓰는 교육비의 일부를 차라리 가족과 세계여행을 다니는 데 할애해서 더 큰 세상을 보여주고 꿈을 심어줘야 한다. 스마트폰과 인터넷 접속만 되면 구글맵과 우버, 에어비앤비로 세계 어디든 찾아갈 수 있고 그들과 같이 생활할 수 있다. 심지어 이어폰으로 통역이 되는 제품이 나오는 세상에서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자.
이제 부부간의 관계도 혼인 관계는 유지하지만 서로의 삶에 간섭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졸혼'이라는 신풍조도 생겼다. 이제 여러분 자신을 위해서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 국가를 위해서, 회사를 위해서, 가족을 위해서, 자녀를 위해서 직업을 갖지 말고, 일하지 말자. 국가도 회사도 가족도 자녀도 당신의 남은 인생을 책임져 주지 않는다. 좀 더 길게 보고 더 오랫동안 일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대기업의 정년도 이제 40대가 된 지 오래다. 자영업이나 사업을 해도 3년을 버티기 어려운 무한경쟁 시대에 살고 있다. 수입은 당장은 적더라도 늙어서도 오랫동안 일을 할 수 있는 직업을 가져야 하는 시대이다. 앞으로는 당연히 투잡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일과 가정 사이의 균형을 가지려면
내가 이 글을 쓰면서도 현실이지만 너무 비판적이 된 것 같다. 그래서 일과 가정의 균형을 가지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란 주제로 다시 돌아와 보자. 균형을 가지려면 우선 욕심을 버려야 한다. 모든 것을 다 잘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자. 우린 수퍼맨이나 원더우먼이 아니다. 행복이 중요하다면 무엇인가는 버리자. 얼마 전에 베트남 호치민에 사업 관련해서 출장을 많이 다니게 되었는데, 다니면서 느끼는 점은 그들은 우리보다 잘 살지 못하는 것은 맞는데 분명히 우리보다 모두 행복해 보이더란 것이다. 과거 10여 년 전 중국에서 느꼈던 감정과는 또 다른 것이다. 이들은 우리와 같이 열심히 일을 하며 부지런한 삶을 살고 있지만 삶에 찌들어 보이지는 않는다. 경제성장에 따라 가처분소득도 늘어나고 있는데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소비를 보면 90%에 육박한다. 버는 대로 대부분 쓰는 것이다. 다녀보면 핸드폰은 삼성 갤럭시와 애플 아이폰이고 오토바이는 혼다를 많이 타고 다닌다. 운전석 아빠 앞에 아이, 뒷좌석 엄마 앞에 아이 이렇게 4명 한 가족이 오토바이를 타고 가면서도 모두 행복해 보이고 식당의 종업원들도 항상 웃으며 인상도 매우 밝다. 물론 베트남의 평균 연령은 30세로 젊은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미래를 위한 저축보다 당장의 소비를 더 많이 할지 모른다. 하지만 이는 선순환 구조로 유통시장이 매년 10%나 성장하는 곳이 베트남이고 그에 따른 기회가 더 많은 곳도 베트남이다. PWC의 예측에 따르면 2050년까지 나이지리아와 더불어 경제성장이 가장 빠른 국가라고 한다. 또한 에이버리데니슨 부대표인 프랑크 스미겔스키는 중국서 30년 걸린 경제발전이 베트남에선 10년 안에 이뤄질 것이라고 한다. 다른 무엇보다도 내가 보기엔 그들이 가지고 있는 긍정의 힘이다.
이제 다른 사람들을 그만 좀 의식하자
해외 특히 동남아에 가면 한국 여성들이 노출이 심한 옷을 입고 아무렇지도 않게 여행 다니면서 한국에 귀국하자마자 감추기 바쁘다. 한국에선 너무 남의 눈치를 보고 남의 시선을 의식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내 멋대로 살아가라는 것이 아니라 나 스스로의 삶을 더 중시하자는 것이다. 어느나라의 일인당 GDP가 높을수록 행복지수가 높은 것이 아니다. 절대적인 빈곤에 대해서 사람은 불행하다고 느끼지 않는다. 상대적 빈곤을 느꼈을때 더 불행하게 느끼는 것이다. 회사를 잘 다니다가 갑자기 그만둔다고 마지막 인사하러 오는 직원들이 종종 있다. 그래 어디로 갈 것이냐?라고 물으면 아직 정하지 않았다고 한다. 한동안 여행 다니며 쉰다고 한다. 예전 같으면 정말 생각도 못할 철부지 같아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도 나쁘지 않아 보인다. 앞으로 살아가야 할 긴 세월에서 한동안의 쉼표를 갖는 것도 나쁘지 않다. 어디서 본 기사였는데 미국 어느 유명한 광고회사의 임원으로 있다가 회사를 그만두고 잠시 구글과 같은 IT서비스 기업에 인턴으로 들어간 경험을 이야기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얼마나 좋은 경험이었을까? 아마도 향후 본인이 잘하는 업무로 다시 돌아오더라도 그때의 경험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길들을 열어줬을 것이다. 새로운 일을 하는데 체면은 필요 없다. 세상을 넓게 보고 길게 보면서 살아가자.
인생에서 저지르기 가장 큰 실수는 자신이 즐기는 일을 직업으로 만들려고 노력하지 않는 것이다.
_말콤 포브스
- <참고 및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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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일해요. 화성남자 금성 여자의 직장 탐구생활 - 존 그레이, 바바라 애니스, 더난 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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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행동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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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밥, 혼술, 쏟아지는 나 홀로 문화 - 정덕현(대중문화 칼럼리스트)